제주 올레길 완주, 환상 자전거 완주

14,02,18 재주올레 18코스 산지천-사라봉-화북포구-연북정

세월민초 2014. 3. 1. 06:09


 

                            2014,02,18 제주올레 18코스 18,8km 7시간

                            산지천-연안여객터미널-사라봉-화북포구-삼양검은모래-연북정-만세동산

 

기생이었으나 천사와 같은 의녀 반수 김만덕

 

 제주시는 동문로터리와 서쪽에 제주목 관아 남문로터리를 중심지로 시가지가 발전하였다

 옛 탐라국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오는 역동적인  제주의 변천사는 어떠했을까

그 자리에는 제주를 관할하는 제주목 관아라는 행정 도심이 있었고 제주 성 안팎에는 백성들이 거주했을 터,,

천혜의 한라산은 제주에 백성들이 잘살 수 있는 모든 자연의 조건을 충족해 주었으며

육지보다 더 풍요로운 기후와 바다가 있었고  어느 곳이 든 땅속에서 용천수가 솟아 식수와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한양과 제주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 뱃길은 육지에서 목포를 중심으로 완도,진도를 경우하여 추자도와 관탈섬을 지나

제주에 도착하는 첫 관문은 화북포구이다, 화북포구는 제주목 관아에서 북동쪽 바다로 약 10리 길에 위치한다

탐라국에서부터 가장 번성했던 화북포구는 화북진성과 관아가 있었으며 왜적과 싸울 수 있는 환해장성, 별도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이 포구를 통하여 제주 목사가 부임하고 유배 온 죄인들과 보부상들이 왕래했다

그리고 중국의 진시황제 때 서불선단이 처음 제주에 닻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장 번성했던 화북포구의 발전은 사라지고 왜 제주항이 새롭게 탄생하였는가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곳 주민들의 말을 인용하면

옛날 화북 고을에 양반들이 포구가 커지는 것을 반대했다는 이야기다

 


 올레 18코스 동문로터리 출발점


 동문로터리의 발전은 산지천을 따라 산지포구 그리고 제주항으로 이어지는 하천 주변 일대를 말한다

옛날 객주 선술주점과 사창가(성매매 업소) 있던 곳으로 포구와 항구를 왕래하는 선원과 뱃길 사람들로 크게 성업 중이었고

제주 기생 김만덕의 객주가 있었으며 주정(술) 공장이 있던 곳이다

 

 

1950년 황폐하고 초라한 서울에 청계천이라고 부르던 산지천

 

산지천은 제주성 안팎에 살았던 제주인에게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잦은 홍수로 공포와 재앙의 하천,,

 효종실록 등에는 큰 태풍이 불어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냇물이 범람하여 사람과 마축이 많이 죽은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석축다리 홍예교와 수구 인북수구, 남수구와 지주암, 조천석등 역사의 자취가 있었던 문화유적, 여러 다리들을 따라 산지포구로 갑니다

 


 산지천 하구에 전시된 중국 난파선

옛날 중국의 정치적 혼란기에 요녕성에서 제주로 피난 온 난파선


 

의녀 반수 김만덕 객주 터

 

산지천 포구에서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항 방향으로 약 500m 가니 옛날 기생 김만덕의 객주 터에 이른다

길가에는 비석이 있었고 뒤편 큰 간판에는 의녀 반수 김만덕 객주 복원 터라 적혀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그녀에 대한 숙련한 마음을 표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여자의 몸으로 백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친 최고의 인물이다

 

1793년 제주도에서는 심각한 흉년으로 세 고을 만 6백여 명이 죽어갈 사항이었고

조정에서는 2만 섬의 구호 식량을 보냈지만 수송 선박 다섯 척이 풍랑으로 침몰하자

그녀가 평생 벌었던 전 재산으로 450여 섬의 구호 식량을 구입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 천백여 명을 구원하였다

이듬해 1795년 정조는 제주목사 이우현을 통하여 그녀의 소원인 한양 궁궐과 금강산을 구경하고 내의원 의녀 반수란 벼슬을 하사하였다

 


옛 주정( 술 )공장

 194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지사가 무수주정 제주공장을 제주항 근처의 부지 약 4만 평 규모로 착공하여 1943년 완공한 주정 제조 공장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지사에서는 일본 전역에 주정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동양 제일의 시설 규모라고 자랑하였다
제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설탕·강냉이 등을 가지고 주정, 즉 알코올을 제조하여 이를 군사용 비행기의 연료로 보급하기 위해 건립되었던 것인데

 이때부터 제주 지역 농가에서는 얇게 썰어 볕에 말린 절간(切干) 고구마 생산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4차선 해안도로를 따라 김만덕 객주 터와 주정 공장을 지나 올레길은 제주항여객터미널에 이른다

이곳 부두에서는 인천,목포,추자도, 완도,장흥, 고흥항을 운항하는 연안여객터미널이며, 7부두 국제항에서 목포행 크로즈선박이 출발한다 



이번 여행에 승선한 오하이아호, 인천항 출발 크로즈선박도 보이고

 


길 찾 기

동문로터리에서 출발한 올레길은 산지천을 따라 하구 산지포구를 돌아 연안여객터미널 앞에서 주택과 아파트단지를 지나 사라봉 정상으로 갑니다

 


사라봉에 위치한 재사단

 

 

 


길 찾기

사라봉은 보기보다 약간 높은 오름이었고 산책길도 잘 가꾸어져 있어 주변 주민들이 많았다 

올레길은 사라봉 동쪽으로 하산하여 이번에는 화북포구를 지나 삼양검은모래해변과 원당오름을 향해 갑니다

 


화북포구 앞

 


 화북포구

 


  화북진성

  이원조의 『耽羅誌草本』 권2 鎭堡條에 보면, 화북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즉, “在州東十里 肅廟戊年 牧使催寬創設 城周三百三步 高十尺 東西兩門 城內有客舍軍器庫助防將一人

 稚總三人 防軍九十二名 伺候船一隻 喚風亭卽客舍”라 하여 화북진성은 제주읍성 동쪽 10리 경에 있으며,

숙종 4년(1678)에 목사 최관이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형상의 『耽羅巡歷圖』에도 화북진성의 도면이 나타난다

 화북성은 성의 축성 당시 높이는 11척, 둘레가303보였고 동쪽과 서쪽 방향으로 두 개의 문이 있었으며, 서쪽의 성문은 포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성안에는 객사와 군기고가 있고 조방장 1인, 치총 2인, 방군 92인을 두고 사후선 1척이 있었으며, 환풍정은 객사였다  -제주대박물관-

 


화북진성 앞에 있는 환해장성

동쪽과 서쪽 지방에 있는 환해장성에 비하여 성 석축들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환해장성 안쪽에 있는 별도연대

별도연대는 제주목에서 동쪽으로 11리에 위치하였으며 화북진에 소속되었고 동쪽으로 조천연대, 서쪽으로 수근연대

봉수로 군사 소식을 전하였으며 봉군으로는 별장(別將) 6명, 직군(直軍) 18명이 있었다



삼양검은모래해변에서 삼양마을을 지나 원당오름에 있는 유적지 불탑사로 오른다

 


삼양검은모래해변

 


입자가 밀가루보다 더 고운 검은 모래


제주에는 용암이 분출하고 분출한 표면에 따라 각 지역에는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돌과 형상

 그리고 분포된 돌가루가 모여 크고 작은 백사장을 만들며 어떤 지역은 은빛보다 하얀 모래가

또는 금빛처럼 빛나는 모래도 있으며 이렇게 검은 모래 백사장이 있어 올레 여행의 즐거움도 더 합니다

 


 불탑사

 


제주도 내에 있는 불탑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불탑사 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탑은 옥개석의 비례에 따라 축조되었으며, 측면 너비 84cm, 정면 너비는 89cm이나 1층의 기단과 5층의 옥신(屋身)은 심하게 좁아져서

 특이한 양상을 하고 있다. 각 층의 옥신이나 옥개(屋蓋)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백과사전-

 


올레길은 농촌 마을과 바닷가, 농로, 무우밭도 지나고

 


사라봉을 내려와 화북포구로 오는 길에는 하늘은 짙은 구름이요, 강한 바람이 불든 이 이제는 태풍이 불어오는지 바닷물결이 출렁인다

 

  

검은색에 진득하고 아늑한 시비코지 길 위에 아름다운 풍광이 있었다

 

 

 


 닭머르

"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안에 들어 앉는 모습을 닮았다 " 한다



시비코지를 지나 신촌마을이다, 사라져 가는 토속집

 


 신촌포구

 


 신촌포구 구름다리를 건너

 


아주 작은 죽도섬을 지나고

 

 

 


신촌마을을 지나는데 작은 카페다

 


금장포 터

기원전 3세기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해오도록 중국 진시황제의 명령을 받고 서불선단이 중국을 떠나 제주도에 맨 처음 도착한 곳이 이 포구다

서불은 다음 날 아침 이곳에서 천기를 보고 조천이라는 글을 바위에 새겼다, 그래서일까 이 지역은 조천읍이 되었다

 


연북정


앞면 3칸·옆면 2칸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축대를 쌓고 다진 기단 위에 세웠다

축대의 북쪽으로 둘러싼 타원형 성곽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망을 보기 위한 망대의 용도로 지은 것이라 추측한다

 기둥의 배열과 건축재료의 배열방법은 모두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다

 


조천마을과 연북정

 

바닷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조선 선조 23년(1590)에 조천관 건물을 새로 지은 후 쌍벽정이라 하였다가

 선조 32년(1599)에 건물을 보수하고 이름을 연북정으로 고쳤다

 ‘연북’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제주도로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계시는 임금을 사모한다는 충정의 뜻을 담고 있다

 

문헌에는 위와 같은 사실을 기록하나 생각건데 이곳은 조천의 군사 시설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유배 온 죄인들이 조천 연북정에 오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사라봉에서 화북포구와 신촌포구를 지나온 올레길

 


올레 18코스 종점 조천 만세동산, 제주항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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