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발원지 찾아 검룡소

13,08,04 한강 발원지6-2 신립장군과 탄금대

세월민초 2013. 8. 9. 00:37

 

                                 13,08,04,5차 6-2코스, 새소리 물소리 3만리 길, 한강 발원지 km 0시

                                 탄금대-공설시장-자유시장

 

조용한 아침 탄금대에 오르니 물안개가 피여 오른다

 

우륵선생과 신립장군

 

 1,400여년전 신라 진흥왕 때(551)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가 그 나라가 망할것을 알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그는 이곳을 삶터로 하여 풍경을 감상하며 산위의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웠다고 한다,이로 연유하여 이 곳을 탄금대라 부르게 되였다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8,000여명의 군졸과 함께 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소서행장의 조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맞아 격전을 한 전적지다

신립장군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역사에 씻지 못할 한을 품고 강에 몸을 던져 장렬히 순국하였다 ㅡ펌 ㅡ

 

시대는 다르나 우륵은 나라를 배신하고 귀화한 배신자요,신립장군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8,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목숨을 받친 순국자다

탄금대는 역사의 현장이나 두 인물의 발자취는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었다

 

물안개 피는 남한강 강가에 서서

충주시청부근 사거리에서 30분을 걸어서 가니 탄금대 후문이다

탄금대 정문

 

 

 

 우륵선생추모비

우륵은 가야출신으로 신라에 이주하여 가야금과 가야음악을 신라에 전해 우리나라 민족음악의 기틀을 정립하는데 하나의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충주 탄금대는 바로 신라시대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탄주한 곳이다. 신라 진흥왕은 551년 고구려로부터 국원성을 탈취하자

 이곳에 우륵과 그의 제자 이문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고대사회에서 음악이 국민통합을 위한 하나의 통치수단 기능을 가진 점에 주목해 볼 때

 진흥왕이 우륵을 새로 확보한 전략적 요충지인 국원성에 이주시켜 음악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십분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551년 진흥왕이 순수차 충주에 머물렀을 때 행궁인 하림궁(河臨宮)으로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을 불러 음악을 연주케 하였다

여기서 연주된 하림조는 하림궁과 연관이 있으며, 하림궁은 탄금대로 비정된다. 우륵은 진흥왕의 명에 따라 계고? 법지? 만덕을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쳤다, 탄금대에 금휴포가 있는데,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잠시 쉬었던 곳이다

 이곳 탄금대에서 연주하는 소리가 강 건너까지 들렸다고 하는데, 그 곳에 청금정이 있다 ㅡ펌 ㅡ

 

신립장군순절비

신립(申砬)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무신으로, 1567년(명종 22)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3년 온성부사로 부임해 북변에 침입해온 니탕개(尼湯介)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하였다

 1591년 한성판윤에 임명되어 재직 중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조정은 이일(李鎰)을 순변사로 삼아 상주로 내려가 적을 막도록 하고

 신립을 도순변사로 삼아 이일의 군사를 응원케 하였다.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여 돌아오자, 신립은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자 왜군의 조총 사격에 대오가 흩어지고 신립의 작전은 어긋난 채 결국 8천여 조선군은 전멸하고 말았다

 신립은 전투 중 남한강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고 전해진다. 장군이 전투 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붙여진 열두대가 탄금대 북쪽에 자리한다

 탄금대에는 신립장군의 충절을 위한「충장공 신립 장군 순절비」와「신립장군순국지지(申砬將軍殉國之址)」비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전사한 8천여 명의 전사자를 위한 팔천고혼위령탑이 있다 ㅡ펌 ㅡ

 

탄금대에 있는조웅장군기적비

앙성면 조개터마을 고개에 있는 안내판

 

충혼탑

 

팔천고혼위령탑

임진왜란 때 전사한 신립장군과 8천여 명의 전사자를 위한 팔천고혼위령탑

 

 

 

 

탄금정

 

열두대

신립장군이 전투 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붙여진 열두대

 

달천과 용섬

 

남한강과 용섬

 

탄금대와 용섬

전날 4대강종주자전거도로를 따라 조정지댐을 건너오니 탄금대 정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역사의 현장 중앙탑과 탄금대를 지나쳤으나 신라시대 최고 문인 김생의 거쳐와 김생도로를 걸으며 난생 처음 환상의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을보면 저것을 포기해야 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청금정 같은 정자에 앉아 탄금대와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가장 가까이서 보며 그 옛날 탐금대에 얽힌 역사의 현장을 생각합니다

궁사님들

 

대흥사

 

탄금대 후문 4대강종주자전거인증소

 

충주시 재래시장을 가다

탄금대를 갈 때는 걸어서 가고 올 때는 시내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다음 여행지 충주댐을 갈려면 다시 충주시내로 돌아와 충주댐행 시내버스로 환승하여야 하기에

 버스기사님에게 부탁하여 자유시장 앞에 하차하니 5분전에 충주댐행 버스는 출발하고 앞으로 1시간 15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나 저나 1시간을 보내자니 눈 앞이 아물한데 시야에 공설시장이 보여 간식으로 떡 한팩을 사는데 시장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천둥소리에 팔뚝만한 장대비가 10분 정도 내린다,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단양 갈 계획은 물거품인가

 

충주시에는 무악시장과 공설시장 옆에 자유시장 또 옆에 공설중앙시장 그리고 의류 패션거리

이들 5개 상권이 한 덩어리로 길이는 약1km 정도이고 넓이은 100m 이상이며 뒷 편에 작은 개천까지니

총 면적은 엄청난 상권이다, 내일이 5일 장이며 기존에 시장이 크게 형성되여 있었다

 

공설시장

 

 

자유시장

 

 

패션거리

 

 

10분간의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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