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발원지 찾아 검룡소

13,08,03 한강 발원지6 목계-조정지댐-탄금대 앞-충주댐

세월민초 2013. 8. 6. 01:08

 

                                   13,08,03,5차 6코스, 새소리 물소리 3만리 길, 한강 발원지 28km 9시간 

                                   목계리-조정지댐-탄금대 앞-반송리-목행리-충주산업단지-충주댐

                                   

남한강에 땜목을 띄워라

 

한반도는 크고 작은 산들이 많고 나무가 울창하여 사계에도 항상 우리 곁에 푸른 숲이 있어 펑화롭다

또한 기름진 옥토가 있어 곡식을 재배하여 스스로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 좋은 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천년간 하늘에서 내려 주신은 태양의 빛과 적당한 비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였고

사계가 있어 자연의 조화로운 아름다운 풍경들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러고보면 한반도는 세계속에서 유일하게 촉복받은 민족이요, 슬기로운 땅에 주인들이다 

그것은 울창한 숲이 있었고 푸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이렇게 촉복받은 자연과 땅을 귀중하게 가꾸며 지키는 일도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옛날의 조상님들은 큰 강은 흐르는 것이요, 하천은 막아도 된다는 말씀인데

자연속에 강물은 흐르는 거시요, 멈추면 전부가 썩는 다는 뜻이다

오랜 옛날부터 남한강에는 황포돗대가 돛을 올렸고 작은 나룻배가 뱃길을 열었으며

그것은 흐르는 강물이 적어서 작은 배가 왕래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년간 강수량이 많지 않아서 유람선이나 화물선이 왕래할 수가 없는 취약한 지리적 여건이 존재합니다

인공보를 만들어 설상가상으로 뱃길이 있다하나 멈춘 물은 부폐하여 썩어서 오물이요

오물 물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고 농사도 질 수 없는 자연의 인재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운하 반대 전국교수모임의 성명요지

 

4대강사업으로 국비 22조가 소요되였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유지관리비용이 년간 1조원이고 시설물 노화시 보수비용,환경 파괴와 수질 악화등의 비용이 더 해지면

전체 유지관리비용은 년간 수 조원씩 불어날 공산이며

4대강사업으로 건설한 16개 보를 폭파하는게 가장 현실적인 대한이다

또한 4대강 강변 친수공원은 주민의 수요도 없는데 년간 유지관리비가 수백억원을 사용한 것이다

 

목계나루터

목계리는 50년 전에 면소재지였으나 교통의 발달로 급격히 쇄퇴하여 지금은 몇십가구에 불과한 초라한 농촌마을이다

오래 전에는 나루터가 있어 목계리를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여 200여호의 주민들이 살았으며 말을 타고 이동하여 마방집이 있었고

주막과 기생집이 20여호 이상이 성업 중이며 한 집에 5~10명의 기생들이 있었다니 가히 큰 상권이였다

그런가하면 이곳에는 옛 전매청 수납 장소가 있어 가을에는 담배잎 수납으로 현금이 많아 노름판과 술집에서 몇일씩 놀고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 후 남한강에는 목계교 다리가 만들어져 당일로 충주를 가고 올 수 있어 전성시대는 막을 내리고

강속에 금덩어리 수석의 시대가 약 20년 가량 지속하다,그것도 생활의 변천사로 수석의 애호가들이 급격히 줄고 경제가 안좋아 수석의 시대도 막을 내린다 

전성시대는 가고 겨우 몇집이 옛 목계수석상가를 지키고 있었다

 

 목계나루터와 목계섬

남한강에 땜목을 띄워 강물을 따라 한양으로 가는 출발지다

지금의 조정지댐 아래 그러니까 목계섬 동쪽 본류 강물이 빠른 여울목이라 충주에서 나룻배와 땜목이 내려올 수 없어 

한양으로 가는 땜목과 농산물품이 목계나루터에서 출발하고 한양에서 돌아오며 소금과 조기,미역등 수산물품이 도착하는 중원의 뱃길이였다 

땜목은 3~5일간 내려가면 광나루에 도착하고 북한강에서 내려 온 땜목이 많아 정착하지 못하면 마포나루 또는 김포나루까지 간다

다시 한양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목계나루터로 돌아오는 배는 10일 정도가 소요된다

목계나루터는 50년 전에 목선이 있었다,지금의 바지선인데 사람들이 직접 긴 나무로 목에 대고 힘을 이용하여 배를 움직이는 목선이다

목계교 다리가 설치되기까지는 서울에서 아침 8시30분에 출발한 화물차가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후 4시30분(8시간소요) 에

가금나루터에 도착 목선에 실려 목계나루터로 건너와 충주에서 1박하고 다음 날 물품을 실고가는 오래된 전통 나루터다

그리고 나루터에서 사람과 소 쟁기를 실고 하루 1회 왕복하는 목계섬 나룻배가 있었고 담배와 수박, 참외, 야채를 재배하였는데

밭에 곡식을 지키는 원두막이 70~80개가 있었다

 섬의 면적은 대략 길이가 4km 넓이가 900m 가장 큰 섬이며 목계리 주민의 생활터였고 지금도 이여져오고 있다 

목계리에서 목계교 삼거리를 지나 가금면 묵계섬공원 방향                         목계섬공원에서 목계대교 아래 자전거도로 진입 

 

목계대교 38번 국도              /             음성 제천고속도로(2014년예정)

 

 

목계섬을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하는 여인,,,목계리 사시는 토박이 주민의 증언이다,고마워요 ㅋ

 

4대강종주자전거도로

 

국민 혈세가 방비되는 현장

4대강사업으로 강 주변의 농경지 또는 임야가 수용되였고 강둑 밖에 불필요한 땅들도 수용되여 있어 전국에는 얼마의 면적이 있을가 ?

목계섬 샛강

 

조정지댐

 

물소리 그 소리는 괴음 소리

 조정지댐 수문 아래 방류되는 강물, 붉은 흙탕 물이 흐른다

이것이 물의 생명인가

붉은 흙탕 물의 주범을 찾아 무더운 여름 날씨에 6일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조정지댐인가 아니면 달천,충주댐인가 ?

조정지댐을 건너 우측으로 접어들면 아담한 주택이 있고 마당에는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길가에 낚시터

 

월상리를 지나

 

오곡이 익어가니 가을의 문턱일세

 

과일은 돈을 주고 먹어야 재 맛이여,,주인장 말씀 ㅋ

비행단 앞 길가에 있는 복숭아 밭에는 떨어진 복숭아가 군데군데 수십개가 보인다

마침 주인이 있어 땅에 있는 5개를 주워서 수돗물에 닦아 그 중 흐물한 놈을 먹으니 단맛은 없고 맹물이다, ㅎㅎ나머지 4개는 달콤했다

 도보여행은 이런 재미도 있으며 배낭에 먹을 것이 있으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가다가 짖치면 쉬여가면 그만이지

제 19 전투 비행단 후문

 

 

자전거휴게소

 

원포리에서 본 조정경기장은 붉은 흙탕 물에서 황토색에 가깝다

 

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2013년8월25일~9월1일까지 진행된다

그런데 잘 못하면 붉은 흙탕 물속에서 경기를 해야 할 판이고 붉은 흙탕 물이 TV를 통하여 전세게적으로 방영된다면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하는 것이라 차라리 경기를 포기하는게 좋겠습니다

다만 대회전에 조정지댐 담수량을 전부 방류하고 새로운 물을 담수하는 방법 뿐이라 생각됩니다

반환점                                                                                                                       출발점

 

 

 

 

탄금대와 아름다운 다리 예술

 충주 탄금대는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란 명칭이 붙은 곳이며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소서행장과 맞서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처음보는 타원형의 다리 밑

 

신탄금대교(2013년예정)

 

예술을 접목한 다리 교각

 

붉은 흙탕 물의 진원지는 조정지댐이였다

 과연 조정지댐은 무슨 일이 있었나 ?

강속의 흙모래를 굴착과 준설을 했고 ,조정경기장을 건설 했다

장마비로 남한강과 달천의 두 물줄기가 유속이 빨라 강바닥의 흙모래가 뒤짚어진걸로 예측하고

4대강사업으로 토사가 흘러 강물은 붉은 흙탕 물로 변했고 그러므로 더러운 물을 우리는 지금도 먹고 있는 것이다

남한강은 충주댐으로 걸어서 계속 진행 중이며 파란 녹색 물이 흐르고 있어 붉은 흙탕 물의 진원지는 않인것으로 확인되였고

달천도 파란 녹색 물이 흘러 진원지는 않이다

 

벡두대간 중원의 땅에서 발원하는 달천을 아시나요 ?

 

조정지댐에서 조정경기장을 지나 상류로 올라가면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탄금대다

탄금대 아래 용섬이 있고 신립장군이 왜군과 싸웠던 곳이다

 

여기서 남한강과 합류되는 달천을 알아 보자,달천은 천보다 크고 하나의 강이라 할 수 있다

달천의 발원지는 괴산군을 중심으로 보은군 속리산 북서쪽에서 발원하여 선유동계곡,화양구곡에서 흐르는 물과 만나고

서쪽으로는 미원면 용곡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미원천과 청주시 현암리 산당산성,목련공원묘지에서 내려오는 감천이 함수하여 성대교에서 달천과 합류한다

또한 음성군 용산리 가엽산에서 내려오는 음성천 충주시 신니면 수레의산에 요도천이다

동쪽으로는 쌍천인데 문경시 분지리 황학산과 백화산 그리고 조령산에서 발원하여 칠성면 두천리에서 합류하는데

여러 개의 천들이 함수하여 큰 달천의 지류를 만든다

 

충주사과

 

오석리 오석초등학교

 

강 건너 목행리

 

반송리에는 이런 구멍가게가 있었다

휴게소,25시보다 싼 시골 구멍가게,아이스크림 500원 물 500ml 500원 모든 제품이 아주 저렴하게 세일 판매

마을은 7가구 정도,아저씨 이렇게 싸게 팔아도 되는거에요,빙긋이,, 웃는 얼굴이 순박해 보였다

 

반송슈퍼 김생지방도로 앞에 안내판과 강가에 비석하나가 있었고 옛날에 김생이 거쳐한 절이며 현재는 없다

김생은 통일신라시대에 활동했던 서예가로 해동필가의 조종이라 일컬어진다

 김생은 말년을 두타행(頭陀行: 승려의 수련)을 하며 보냈는데 그 장소가 금가면 유송리에 있는 김생사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김생(金生)조에,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80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행서·초서가 모두 입신의 경지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생을 신품제일(神品第一)로 평하고 있다 ㅡ펌 ㅡ

충주댐에서 흐르는 강물은 파란 녹색의 물이였고

탄금대 강 건너 앞 마을이 오석리다,고개 넘어 2km를 가면 반송리 김생길도로를 만나고

 반송마을 앞에는 파란 녹색 물이 흐르는 남한강이 있었다, 붉은 흙탕 물이 않이고 파란 녹색의 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붉은 흙탕 물의 진원지는 조정댐이다

영원히 잊지못할

난생 처음들어보는 아름다운 새소리 하음

반송리를 지나 문곡리 앞 남한강 지방도로 200m 거리 양쪽 숲속에서는 200~300마리 이상의 다양한 새들의 합창 소리가 들렸다

숲속에 숨어서 숨바꼭질하는 새들의 종류는 모르나 많은 종류의 새 울음 소리에 갈 길을 멈춘다 ,4시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매미들의 합창, 수백마리가 동시에 울었다 끈기는 묘기 너무나 환상적인 순간의 선열이였습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하여 오늘도 길 위에서 나는 서성인다

금가면 목행교

 

 

 

친환경 충주시

남한강 여주시 구간은 강변공원과 강둑 인도에 전체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했는데 충주시는 자전거도로 외 일부 구간만 시멘트 길이 있었다

물오리의 비상

 

충주산업단지로 지나 가는 화물열차

 

충주산업단지 입구

 

 

 

강변 자전거 길

 

 충주댐하류

 

 

충주댐전망대

 

4대강자전거인증소

 

충주댐

 

충주호

6시가 지나서 잠시 소낙비가 왔다,땀 흘러 걸어 온 보람으로 소낙비에 젖어 본다

팔당역에서 6일간 기타 거리 14km와 136km 대략 150km 4대강종주자전거 길을 따라 충주호 전망대에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30도 이상 무더운 여름 날씨었지만 아무리 더워도 참을 수는 있었으나 자전거도로 시멘트 콘크리트 길은 

하루 종일 걸을 수 없었다, 다시는 걷고 싶지 않는 길 4대강종주자전거 인도 길 이제는 시원 섭섭하며 헤여지는 지점입니다

 

2일차 내일은 아침 일찍 탄금대를 돌아보고 충주댐에서 배를 타고 월악산과 금수산 그리고 옥순봉과 구담봉의

아름다운 비경을 선상에서 보는 감동의 순간을 느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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