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3,02,21 안동권씨 대종원을 찾아서

세월민초 2013. 2. 23. 21:09

 

 

안동권씨 권태사 공 묘소를 가다

 

조상의 묘역을 찾은다는 것은 나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안동권씨 대종원 자료를 인용하여 파악해 보니, 고려조에 정승 8명, 영의정 5명, 좌의정 4명, 우의정 2명, 판서급 정2품 이상 49명으로

나라, 성씨 인원을 구분하여 보면 많은 인원이 않이였으나 고려조에 높은 관료로 등용하여 국사에 지대한 발전을 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역사에 기록되여 수백년 내려오는 자료들이 있으며, 타 성씨에 비하여 성품이 부드럽고 인품과 덕망이 높아

많은 타 성씨 사람들로 부터 귀감이 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양반댁이라는 호칭을 받고 있으며 안동권씨의 자손들이 앞으로 더욱더 번성하여 덕망이 깊은 인물과 인재가 등용되길 바랍니다

본인은 안동권씨 수중공파(장남)로 세대배정 항렬 37世, 純(순) 항렬이며 2남 중 둘째 입니다

 

어릴때 기억을 뒤돌아 보면 동네 어르신들이 일년에 한번인가 안동권씨 문중으로 재사를 지내로 가시는데 쾌 요란스러웠다

말인 즉, 전라북도 정읍시하고도 시골에서 경북 안동으로 갈려면 옛날에는 아주 먼 거리지요, 차라리 한양가는게 더 낳을 지도 모르고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어르신들이야 가야할 의무와 책임감으로 그 먼 길을 떠나신다

지금 현실을 보면 너무나 큰 격세지감이다, 오랜 전통이 좋은 것은 조상이 잊기에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던 시골은 정읍시 시내에서도 북쪽으로 시골길을 따라 삼십리 들녁과 밭을 지나면

성씨는 각각 다르나 3개 마을이 한곳에서 모여 약 100여 가옥 이상이 옹기종기 잘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안동권씨는 동네 한 중앙을 기점으로 30여 가옥이 집성촌을 이루며 좀 낳은 생활을 한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종종 안동권씨를 만나 함께 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전부가 저 보다 항렬이 2~3世가 높아

할아버지 또는 그 위 世라 대화하는데 여간 불편한 점이 많아, 해서는 안되는데 항렬을 아예 3世를 올려 보니 대접도 받고 ㅋ

안동권씨는 한 본이라 전부가 한 핏줄이고 형제며 부모와 같다,그리고 안동김씨와 안동장씨도 한 조상의 맥이다

 

 

 

 

 

안동권씨 세차배정항렬(安東權氏 世次排定行列)

31世 32世 33世 34世 35世 36世 37世 38世 39世 40世

항렬

丙 O

重 O

泰 O

寧 O

五 O

赫 O

純 O

容 O

九 O

升 O

예비항렬

大萬友
대만우

宗仁武
종인무

春龍正
춘용정

憲鐸爵
헌탁작

肅悟炳
숙오병

奇景英
기경영

宅處虞
택처우

俊說益
준설익

塾軌藝
숙궤예

斗協士
두협사

41世 42世 43世 44世 45世 46世 47世 48世 49世 50世

항렬

O 一

O 元

O 全

O 澤

O 書

O 溟

O 七

O 駿

O 旭

O 甲

예비항렬

51世 52世 53世 54世 55世 56世 57世 58世 59世 60世

항렬

懿O

恒O

玉O

德O

肇O

京O

世O

八O

執O

求O

예비항렬


※ 丁未 1907년 大宗會에서 각대별 수자가 포함된 문자를 정하였다.              - 안동권씨 대종원 자료 펌 -

 

 

 

안동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후면사무소를 지나 권태사 공 묘소 앞 정류장까지는 15분 거리이며

도로에서 2km 진입하면 천등산 남쪽 조화곡 자좌이다, 도선이 명당으로 점친 곳이라 하네요

천등산 북쪽에는 고려때 창건한 유명한 고찰 봉정사가 자리 잡고 있어 유서 깊은 산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삼태사(三太師)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 권행, 장길을 삼태사라고 한다. 고려 개국 당시 백제 견휜과 싸워 승리한 공로로 삼태사란 칭호를 받았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남쪽 조화곡 자좌

  이조 성종때 17세손인 평창군사 "옹"이 묘소를 찾은 뒤 실전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그 밑에 장사지내도록 하였으며

 24세손인 "시"가 신도비명을 저술하고 고종 신축(1901)년에 32세손인 "중현"이 신도비를 개수하였으며 정조 병오(1786)년에 추원사를 경주 운곡에 세웠으나

 고종 무진(1868)년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된 뒤 병진년 중건을 도모하였으나 사람들의 공논으로 운곡서원에 현판으로 달았다

 

 

 

 

 

 

 

 

경인(1950)년의 사변때 묘우가 소실되었고 무술년에 중건 능동의 묘사일을 매년 한식일과 10월 중정(음력 10월중 "정"자가 두번째 드는날)

태사묘의 향례일은 2월 8월 중정일 경주 운곡서원의 향례일은 3월 초정이다

 

 

 

 

 

 

시조 권태사공

휘는 고려사의 「행」 자로 되었고, 본래는 김씨이며 신라의 종성이었다

 

경순왕 3년 기축(929)년 10월에 견훤이 고창군를 포위하였을 적에 공께서 김선평,장정필과 함께 의를 주창하여

고려 태조를 도와 경인(930)년 정월에 견훤을 병산에서 물리치니 고려 태조과 기뻐하여 이를기를 「행」은 능히 기미에 밝고 도에 능통하다 하고

권자로 성을 하사하고 공신으로 봉하였으며 작위를 주어 대상이 되시고 삼한벽상 삼중대광 아보공신 태사에 오르셨으며,

군을 승격하여 안동부라 하고 식읍토록 하였다. 안동부민들이 공의 위덕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드리고 김공과 장공을 배향하였다

 

 

 

 

 

 

 

 

 

728x90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1,31 채석강,솔섬 부안군  (0) 2014.02.01
13.11.24 송도가는 길  (0) 2013.11.29
06, (음력02,08) 불광동 성당  (0) 2013.11.14
13,02,10 그리운 내 고향  (0) 2013.02.12
10,10,18 외갓집 가는 날  (0) 2010.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