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관동별곡 8백리 길 완주

12,12,09 관동11,죽서루-맹방해변-덕산항-대진항

세월민초 2012. 12. 14. 17:29

 

                          관동별곡 8백 리 길 11구간   12,12,09 , 소요시간 5시간 30분

                                             

     죽서루-동양시멘트 앞-맹방해변-덕산항-근덕오리마을

 

1580년 조선 선조 13년 송강 정철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관동팔경과 해·내·외금강 등 절승지를 유람하며 읊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송강 정철은 지식과 학문이 뛰어나 선비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로 선조가 정철을 영의정( 국무총리 )으로

발딱하나 거절하고 여러 높은 관직을 주며 등용하기를 간절히 부탁하나 끝까지 고사한다

송강 정철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선조가 강원도 관찰사, 지금의 강원도 도지사로 발령하니 정철은 선조에게 고맙다며

궁궐이 보이는 작은 문으로 선조에게 절을 했다는 일하다

아무리 높은 벼슬도 탐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인간의 진실된 삶이라 생각합니다

 

송강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바로 부임지로 가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아래와 같은 길을 갑니다

관동별곡은 본사 1(1-7) 한양-평구-여주-원주-춘천-철원-회양-통천 금강산에서 동해로 내려가기 전 읊은 작품이며

본사 2(1-8) 동해안 총석정-삼일포-청간정-낙산사-경포대-죽서루-망양정-월송정 관동팔경을 읊은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통천에서 울진까지 강원도라 했고 관동별곡 8백 리 길 송강 정철의 발자취를 따라서 탐방을 하기로 하며

 북녘에 있는 통천 총석정과 고성 삼일포는 남기고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울진군까지 가기로 합니다

 

[본사Ⅱ ─ ⑥] : 죽서루에서의 객수와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

眞진株쥬館관 竹듁西셔樓루 五오十십川쳔 나린 믈이

太태白백山산 그림재랄 東동海해로 다마 가니,

팔 하리 漢한江강의 木목覓멱의 다히고져.

王왕程뎡이 有유限한하고 風풍景경이 못 슬믜니,

幽유懷회도 하도 할샤, 客객愁수도 둘 듸 업다.

仙션槎사를 띄워 내여 斗두牛우로 向향하살가,

仙션人인을 차자려 丹단穴혈의 머므살가.

 

진주관[삼척] 죽서루 (아래의) 오십천 흘러내리는 물이

태백산 그림자(아름다운 경치)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그 강물을 임금 계신) 한강의 남산에 닿게 하고 싶구나.

관원의 여행길은 한계가 있지만, 풍경이 싫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구나, 나그네 시름도 둘 곳 없다.

신선이 탄다는 뗏목을 띄워 내어 북두성과 견우성으로 향해 볼까?

사선을 찾으러 단혈이란 동굴에 머물러 볼까?

 

관동팔경 6경 

 

풍경이 아름다운 누각     죽서루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 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 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죽서루와 오래된 고목나무 그리고 돌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현재 앞마당은 문화재 발굴 현장

 

 

 

보물 제213호 죽서루

 

삼척시 서쪽 오십천(五十川)이 흐르는 강안(江岸)에 솟아 있는 절벽 위에 위치해 있는데

관동 8경의 하나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앞면 7칸, 옆면 2칸의 겹처마 단층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원래 5칸이었던 것을 좌우로 1칸씩 늘린 듯 이 부분의 공포는 가운데 공포와 다르게 장식이 과다하여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가운데 5칸은 기둥머리에 헛첨차를 꽂고 두공첨차를 받쳐 올려 이출목(二出目)째에서 행공첨차로

장여와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자연암반 위에 세워진 기둥은 모두 길이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누각 아래의 기둥과 외진 주(外陣柱)는

바위 생김새에 따라 길이를 조절한 후 글겅이질을 해서 세웠다

누각의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이색적인 건축양식 기둥이 상층은 20개 하층은 13개

 

상층의 기둥이 20개인데 비해 하층의 기둥은 13개로 상층에 비해 7개나 적고 하층의 기둥 길이도 다르다

이것은 자연암반과 자연초석(막돌)을 이용하여 건물을 세웠기 때문이고

기둥이 세워진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기둥의 높이도 각각 다르다

 

 

 

한 건물에 2가지 건축양식을 조화시킨 죽서루

 

죽서루의 공포는 주심포와 익공의 두 가지 양식으로 되어 있다

원래의 5칸은 주심포로 되어 있으며 좌우로 한 칸씩 증축된 곳에는 익공을 채택함으로써

통일성과 함께 변화도 추구하고 있으며 한 기둥에만 동남쪽 귀공포의 장여뺄목에 황룡과 청룡을 조각하여

한국적인 해학미를 살리고 있다 

 

누각에 올라갈 계단이 없다

 

측면 칸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자연암반의 형태에 적절하게 조화되기 위해서이며

북측면은 2칸인데 비해 남측면은 3칸으로 되어 있다

홀수칸인 남측면을 주출입구로 삼기 위해서이다 또한  2층 누각이면 반드시 있어야 할 사다리가 없고

누각 좌우의 천연암반을 이용하여 2층 누각으로 올라간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어제시(御製詩)와 1662년(현종 3) 허목(許穆)이 쓴 죽서루기(竹西樓記)와 제일계정(第一溪亭)’을  비롯하여

13점의 편액과 현액이 걸려 있다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은 숙종 37년(1711)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게시한 것이다

 

 

 

 

 

                                                    오십천 백로 서식지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에서 가장 절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죽서루에서 내려다보는

오십천 경관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절벽부의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감입곡류하천으로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되어

오랜 기간 하천작용으로 퇴적 변형되어 현재의 다양한 석회암지대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 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은 것이라 전한다

죽서루가 위치하는 곳은 오십천의 협곡이 끝나려 하는 부위로 오십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카르스트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태백산지와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송강 정철의 가사의 터

 

문화관관부에서는 1991년 2월을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표석을 2개소에 세웠다

 

하나는"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 8경의 하나인 삼척 죽서루 경내이고, 다른 하나는"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 부근이다. 표석에는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수결, 세움 말, 가사 창작의 배경을 담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박물관 구실을 하도록 되어있다

 

 

 

용문바위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 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다

그 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용문바위에서 본 죽서루

 

 

 

 

오십천 삼거리

 

 

 

오십천교

죽서루에서 다리를 건너 동양시멘트까지는 2,5km

 

 

 

오십천

 

 

 

동양시멘트 앞에서 7번 국도를 따라 1km를 올라가면 우측에 남초등학교이고

사거리에서 좌측 옛 7번 국도로 진입 (보행자가 건널 보행자 표시길이 없다)

 

 

 

 

삼척항이 보이고  옛 7번 국도 가파른 고개 정상에서 ,,

 

 

 

고개 정상에서 만난 사람? 이 차량 주인님은 이학구 가수다

CD 음반도 있고 노래연습 중인데,,

잠시 실례 나도 몇 곡 불렀다 ㅎ

 

 

 

 앗 ㅡ 싸 노래 한 곡조 ㅋ , 여행은 즐겁고 인생은 방랑시인이라 ~ 

 

 

 

명사십리 맹방해변 전경

 

 

 

 

한재밑, 상맹방해변 진입로  맹방리 가는 인도에는 아름드리 왕벚꽃나무가,,

 

 

 

노지 시금치 같고,  겨울에 보는 푸른 들녘이 좋다

 

 

 

 

상맹방해변에서 덕산해변까지는 명사십리보다 더 멀다

 

 

 

맹방해변 테크로드를 따라

 

 

 

 

 

 

 

 

 

 

 

 

 

 

 

 

 

 하맹방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덕산해변으로 가는데요

반대편 저 쪽에서 아리따운 여인네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오늘은 틀려고 ㅋ

 

08시 30분에 여행을 시작하여 덕산항에 12시 도착, 일요일이라 식사할 곳이 없어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으로 25시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덕산해변 끝에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가니 덕산항에서의 알바,,

아뿔싸~ 막킨 마지막 해안선 도로다, 여기서 다시 뒤돌아서 옛 7번 국도 근덕면사무소까지는

2km 왕복 4km, 십리를 헛 고생했네요

 

 

 

근덕초등학교와 파출소 

13시, 근덕면사무소에 도착 몇 곳 식당이 있는데 날씨가 추워 얼큰한 짬뽕이 구미를 당긴다,

식사 후에 갑자기 피로가,, 

 

 

 

오리마을 보리밭

 

근덕교 다리를 건너 다시 하천 둑방을 타고 대진항 근처까지 가다 중단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삼척시로 돌아온다

숙박과 식사 관계로,,

 

오늘은 5일째 여행이다, 겨울 바다는 강추위에 여행하기에는 좀 힘이 든다

장시간을 걸어야 하고 마땅히 쉬어 갈 장소도 없으며, 얼굴도 차고 손 발도 보온을 하여야 하는 불편함도 있으니

사실 떠도는 여행은 봄과 가을이 좋지만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어디 때를 맞추어 갈 수는 없는 거시고

겨울철에라도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삶에 큰 힘이 되는 거시다

 

이번 여행은 그저 동해바다를 유람 삼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모르고 살았던

일부분을 일깨우는 알찬 양식을 담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옛 정통 양식의 정자와 누각에 대한 공부를 하는 중이고

거기에 관동별곡 8백 리 길을 따라 송강 정철에 대한 가사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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