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동해까지 DMZ 자전거 종주

15,07,11 4구간, 임진강을 거슬러 감악산을 넘다

세월민초 2015. 7. 11. 23:19

 

 

                                15,07,11 문산역-임진각-율곡로-장파리-황포돗배-주월리-25사단-동두천 중앙역

 

 

                     DMZ 군사 분계선 따라가는 자전거 여행 4구간

 

36도 폭염 속에

임진강을 거슬러 감악산을 넘

 

 낭림산맥(狼林山脈)의 남쪽 마식령에서 갈려, 황해도와 함경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서남방향으로 뻗은 길이 150㎞, 높이 500~1,400m의 산맥이다

 이 산맥은 본래 한 줄기의 산맥이었으나 임진강의 본지류에 의해 세 줄기로 갈라졌다

산맥 북부는 1,300~1,500m이며 심한 협곡을 이루고 있다

그 중 임진강 본류와 그 지류 고미탄천 상류 계곡은 양쪽이 병풍 같은 절벽을 이루어 이름난 산악지대이다

 이 산맥 중에는 백암산(1,229m)·제두산(1,340m)·추애산(1,529m) 등 이름난 산이 있다

 이 산맥 일대는 고도에 비하여 기온이 낮다  - 백과사전 -

 

 

임진강의 발원지는 옛 대동수경의 기록에는 북쪽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 노인령이라 기록되었다

또 하나는 함경남도 소두류산 831m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총 연장 250km이며 그 중 남한은 92km이다

 

임진강은 민족의 한이 서린 DMZ를 흘러 남한 강원도 연천군 중면 중사리에 도발한다

다시 강물은 북쪽 DMZ로 흘러 북한 왕장면 고장리를 돌아 남한 고잔하리와 황산리 마을 사이를 흘러

연천군 군남면을 지나 전곡읍 마포리에서 한탄강과 두 강이 합수하여 큰 강을 이른다 

 

임진강은 유유히 흘러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지나 서쪽 탄현면 만우리 앞에서 임진강 한 중앙을 기점으로

강물 위에서 북한과 남한의 DMZ 군사 분계선이 나누어 진다

임진강은 다시 굽이쳐 흐르며 성동리 오두산 앞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민족의 젖줄로 아주 큰 강이 되어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를 흘러 가금리 애기봉을 뒤로하고

강화군 양사면과 교동도를 돌아 서해 바다로 흐르는 한 많은 강이요

가슴 아픈 물길이여 민족의 역동적인 강이다

 

이번 자전거 여행은 오래전부터 계획한 북한과 남한의 DMZ 군사 분계선을 최대한 근접하여 가는 색다른 길이요

임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작은 물고기를 따라가는 심정으로 아름다운 여행의 대미를 만들고 싶었다

 

가는 길은

파주시 문산역에서 임진각을 찍고 다시 통일로 고가교에서 37번 4차선 도로를 따라 적성면을 지나서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수하는 곳 연천군 전곡읍 마포리에서 임진강 상류와 DMZ가 근접하는

군남면 삼곶리와 왕산리를 돌아 철원읍 북쪽 우리나라 최전방 월정리역(폐쇄)을 지나

동쪽 김화읍으로 기슭을 돌려 다시 한탄강 상류를 달린다

 

 43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며 5번 지방도로가 시작하는 근북면에 이르면

 DMZ 군사 분계선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다음은 5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면 물의 도시 화천군이다

화천에서 북한강을 따라 춘천댐을 지나 춘천호반을 돌아 춘천역에 이르면 이번 여행의 종착지다

 

실크로드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낭만과 설레임이 숨 쉬는 로드 길이다

 

 

 

 

국도 1번 통일로 마지막 기점

 

 

 

임진강역으로 가는 철도다

 

 

임진강역에서 기차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면 우리나라 북쪽 마지막 역 도라산역에 이른다

 

 

 

 

옛날 철도 흔적

 

 

 

철마는 달리고 싶다

 

 

 

6, 25 전쟁 때 포탄에 맞은 기관차

 

 

임진강 철교

 

 

 

 

 

 

율곡로

4차선 도로는 소형차와 펌프 트럭 25톤 대형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라 자전거가 운행하는데

 아주 위협적이라 조심해야 할 듯

 

 

여우고개대대

임진강을 따라가면 수많은 군부대와 군시설물이 주변에 많다 

 

 

아마도 포 부대인가 보다

 

화석정 유적지 찾기

 

율곡로 4차선 도로 진입하여 여우고개 대대를 지나면 길가에 율곡과 신사임당 있는 곳이라는

간판이 아주 크게 있고 조금 가면 우측으로 화석정가는 이정표가 있다

일단 4차선에서 나와 폰을 확인하니 거리가 멀다 화석정 캠핑장을 잘 못 본 것이다

화석정은 임진강 강변도로 위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 넘 아쉽다

 


 

화석정과 임진강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깊은 곳이다


 율곡 선생은 선조때 10만양병설을 주창 했지만 유성룡 등에 밀려 받아들러지지 안 했다

그후 낙향하여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 29일 밤) 억수같은 폭포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 펌 ㅡ


 

 

율곡리

율곡리에는 율곡 습지공원과 율곡 수목원이 있어 잠시 관광을 하기로 하는데

낮 기온이 36도 폭염 주의보다, 대지는 열기에 후끈하고 바람 한점 없는 무더운 날씨다

 

 

 

               [유남 대서대중대숙우상원(遊南臺西臺中臺宿于上院)]

                                                                                                     율곡 이이

 

                 깊은 산골에 날씨 활짝 개었는데

                바위에 흐르는 물소리 맑기도 하구나

                오대산 가는 곳마다 흥취에 끌리어

                이끼 길에서도 발걸음 가볍다

 

                다래덩굴 휘어잡고 절정에 오르니

                휜 구름 추른 벼랑에 피어 일고

                옹기종기 작은 산들을 굽어보니

                여기저기에 연기낀 나무들이 펀펀하네

                돌 틈에 흐르는 우통수의 차가운 샘물

                답답한 심정 나도 어쩔줄 모르겠네

 

                한번 마시니 세상일 다 잊고

                선방(禪房) 방석에 앉으니

                새벽 종소리에 깊은 반성 떠 올라

                담담한 심정 나도 어쩔 줄 모르겠네

 

 

 율곡 이이의 출생과 성장기를 알아보자

 

 어머니 신 사임당 (19세)는 출가 당시 아버지 이원수(22세)가 수운판관이란 관직에 있었다

 조세 곡물을 나라에 운반하는 선박 일을 하는 벼슬이다 

신 사임당은 강릉에서 출가하여 강릉부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 살림을 시작하였다

 

* 여기서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가 근무했던 곳 백옥포리 나루터가 있었을까?

강원도 봉평면 산골짜기에서 곡식을 싣고 영월로 가는 뱃길이 있어야 한다, 멀게는 한양으로 간다

메밀꽃 필적에,, 봉평면 평촌리 율곡 사당 앞에는 흥정천이 흐르고 이 천을 따라 장평을 지나면 평창강이다 

영월로 접어들면 서강이고 더 내려가면 아우라지 땜목 천 삼백리 동강과 만나 남한강에 이른다

옛날에는 흐르는 물 수량이 많아서 가능했으리라, 이곳에서 18년을 근무했다 *

 

그곳에서 12년째 되는 해에 이이를 잉태하여 친정인 강릉 오죽헌에서 신 사임당의 나이 33세 때

4남 3녀 중 다섯째인 3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율곡 이이는 백옥포리에서 어린 시절 6년의 세월을 보내고

한양으로 이사하여 수진방(수송동과 청진동 사이)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다

19세 때 어머님을 잃은 슬픔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교에 심취하다

 20세에 속세로 돌아와 강릉 외가에 머물다 21세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한성시에 장원급제하고

다음 해 22세 때 성주 목사 노경린의 따님과 혼례 한다

 

파주에는 자원서원이 있고 가족 묘가 있는데

신사임당 합장묘와 율곡 부부 묘가 있다

 

위에 글을 작성하면서 율곡 이이의 고향은 과연 어디인가? ? ?

 

 

 

벌써 가을인가?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었다

 

 

작은 연못에는 연꽃 몇 개가 피었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물레방아와 원두막도 있고

 

 

이건 뭐지? 짚 삿갓과 나무 의자 쉼터인가

 

 

소 한 마리와 초가집

 

 

임진강 변 북쪽 지방 대나무

초가집 울타리로 심어 놓은 작은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

 

 

옛날 시골 살림살이들

 

 

임진강

 

 

 

 

 

민족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통곡 

가도 가도 끝없은 한 많은 철책선

 

 이 철책선을 넘어 임진강을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 안이다

최전방 DMZ 군사 분계선은 짧게는 4~8km 이상을 북쪽으로 더 가야 있다네요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는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에서 부터

김포시 애기봉과 강화도 교동도로 이여지는 강 중앙을 말한다

 

 

 

임진강에서 다시 율곡로로 진입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마을에 있는 장마루 음식점 거리

 

 

 

표현할 수 없는 쫄깃한 감칠맛 먹의 면 먹을수록 입가에서 살살 녹은 부드러운 육질

 

내가 먹어 본 탕 중에서 제일 일품요리고 시골 사람들이 만원이다

 제일 못한 곳은 행주산성 주변에 있는 모 탕 집인데 사람들은 많다

먹거리도 알고 보면 정말 웃긴다

보신 뚝배기탕 12,000냥

 

 

이번에는 적성면 두자리에서 임진강 변으로 진입하여 보자

 

 

고랑포구 가는 길은 적성면에서 북쪽으로 장남교를 건너면 장남면이고 임진강 하류로 약 2km 거리

북한 김신조가 고랑포구 아래 1km 지점에서 임진강을 도강하여 서울 북한산으로 갔다는 곳이다

 

 

옛날에 우체국과 화신 백화점이 있었다는 큰 포구 고랑포구

 

 

임진강 고랑포구 나룻터

 

 

두지나루 황포돗배

 

 

임진강 둑을 따라 주월리 육계토성을 돌아보자

 

 

항공 사진

 

임진강 굽어지는 곳에 축조된 육계토성 전경

 

 

북쪽에서 본 육계토성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임진강 변에는 백제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육계토성이 있다

현재 토성일대는 논과 밭의 경작지가 넓게 분포돼 있어 어디가 성인지 일반인들은 구분하기 어럽다

토성은 임진강이 굽이굽이 돌아 활처럼 튀어나온 지형에 축조됐다

 성 앞에는 수심이 낮아 옛부터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나룻가에 사람이 많아지자 감시하는 작은 통제소가 설치되었다

 

하북 위례성이 육계토성이란 유래를 알아보자

기원전 13년  온조왕은 하남 위례성 천도 불가피론을 밝히면서 “말갈과 낙랑의 위협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사기에는 “기원전 16년 말갈이 북쪽 경계를 쳐들어 왔다

 말갈 적병 3000명이 와서 위례성을 포위하자 왕은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않았다”는 등의 말갈 침입 기사가 있다
낙랑은 말갈과 연합, 백제를 끈질기게 쳐들어왔다

결국 낙랑과 말갈의 위협 때문에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 천도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후 삼국시대 때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임진강 유역과 육계토성을 찾지하기 위해 수 없는 전쟁을 했으며 중요한 군사요충지다

고려와 조선도 이곳을 이용했고 6.25전쟁 때도 북한 전차부대가 이곳에서 남한으로 도하를 했다

 

 

 

둑은 비포장 도로

 

 

주월리 마을회관과 버스 정류장

포도밭이 있고 사과와 감나무, 인삼밭도 있으며 약 60여 호 가구가 마을을 이르고 있는 풍요로운 농촌

팬션이 있었으며 매운탕 집이 3개가 있다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가던 길을 멈추고

 

여기에서 연천군 전곡읍이 얼마 되지 않지만, 내일은 비가 내려 로드 전차를 운행하기가 어렵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주월리에서 전철역이 가장 가까운 역은 동두천시 중앙역이다

371번 도로 가월리-구읍리-적성면 시내-감악산-남면-364번 도로 한산리-동두천 중앙역 이렇게 가는 길을 잡았다

 

 

 

 

구읍리 칠중산 칠중성 아래에 있는 옛 적성 향교

 

 

 

 

 

 

6,25 전쟁 당시 적성면 설마리 감악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전투 중 사망한 영국군 추모공원 

 

 

 

 

감악산 등산로 입구

 

구읍리를 지나 한참을 달리니 적성 시내다

이제는 감악산 계곡 길을 넘어야 하는데 무더위를 넘어 폭염이라 체력의 한계를 잘 극복해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계곡 휴게소에서 시원한 물을 단숨에 두 병을 마시고 한 병을 보충하고 서서히 오른다

 

 

돌고 도는 계곡

 36도 폭염, 바람 한점 없는 감악산 계곡 오르막을 오르는 게 숨이 가쁘

그늘에서 잠시 쉬자

 

 

감악산 해발 676m 능선

 

감악산은 옛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렸다

파주시 적성면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지만 일단 정상(675m)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암봉과 낭떠러지가 도처에 널리 있다. 그래서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고 한다

 

 

676km 임꺽정봉

6년 전에 등산했는데 의적 임꺽정이 은거했다는 동굴이 있었다

 

 

설마 13교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에 위치한 높은 산이라 산새가 험하고 계곡도 깊어 흐르는 물줄기 따라

다리가 설마 1교에서 13교까지 있으니 산 고개를 오르는 도로도 높다 

아마도 우리나라 단일 다리 중에서 가장 많은 다리가 있는 곳이다

 

 

 

제25 보병사단

 

감악산을 넘어 내려 막 길에서는 시속 40~50km로 달리니 양주시 남면에 있는 제25사단이다

동두천시로 가는 길은 25사단 끝에서 담벼락을 타고 364번 지방도로 따라 북쪽 한산리로 가는데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동두천시 중앙역은 아직도 멀고 멀었으니 평균 시속 35km로 달린다

4차선 도로는 차량 통행이 아주 많아 달리는데 위협적이라 조심해야 할 듯

무더운 날씨에 달리는 운동으로 온몸에는 땀으로 범벅이다

 

 

동두천 중앙역

 

오늘은 물을 7병을 먹었고 총 62km 라이딩에 힘든 하루다

어쩌던 종착지 앞에 오니 2,500냥 짜장면이라는 간판에 눈이 꽂았

홀에는 냉장고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맛도 좋은 짜장면 한 그릇을 잘 먹었다, 1년만인가

중앙역으로 진입하니 우측에 머리 긴 스타일에 다리가 긴 아가씨가 종종걸음이네

한순간 피로가 확 풀린다, ㅎ

전철을 타고 3-4 정거장을 지나니 비가 내리고 목마른 대지를 적신다

시원한 전철에서 잠시 잠에 취해 본다 

 

다음에 DMZ 2구간을 기대해 보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