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순례

13,02,10 금산사 김제시

세월민초 2013. 2. 11. 12:41

 

                 

                                  13,02,10 내가 가본 역사기행

 

 

미륵이 중생을 위하여 다시 온다는데

모악산 기슭에 숨겨진 웅대한 금산사

 

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수 있게 한다
흔히 통일신라 시기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의 순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게 한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음을 알수 있다
금산사에서 순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던 진표율사는 27세 때에 변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철저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 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통일신라 시기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 메김 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금산사 자료 펌- 

 

보제루

대적광전                                   오층석탑                            미륵전

 해탈교를 올라서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니 보제루 누각

보제루와 대적광전,나한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모악산 기슭에 숨겨진 웅대한 가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측에는 미륵전 그 위쪽에 오층석탑과 방등계단사리탑, 적멸보궁 그리고 서쪽에는 대장전,범종각이 자리 잡고 있군요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毘盧疵那佛)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이다,"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여 화엄전이라고도 부른다

전면7칸 측면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건물이었으나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 1994년 본래대로 복원하였다

신라 때 진표율사가 창건하면서 지금의 미륵전을 금당(金堂)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자리에는 법당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대적광적 앞에 있는 석련대와 육각다층탑 

전면7칸 측면4칸

5여래 6보살

오백 나한전 
소승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나한에 대한 신앙을 하는 전각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서 의역하여 살적(殺賊),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 한다.
살적은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항복받아 죽였다는 뜻이며, 응공은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의미이다.

 

미륵전( 보수 공사 중)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규모의 미륵전이 보인다,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특이하게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미륵전은 3층 건물에 팔작 지붕이고 전면에 채광창을 설치하여 법당에 햇살을 통과 하도록하였고

공포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넣었으며 각 층 벽에는 많은 벽화로 장식되였는데 보수공사로 일부만 볼 수 있어 아슀습니다  

미륵보살

미륵이라 하면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여러 경전을 통해 전해진 미륵신앙은 삼국의 불교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준 신앙이었다

법당 안에는 하나의 기둥으로 높이 3층까지 올라 간 기둥들, 국내 유일한 건축 양식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7호,탑의 재질이 흑색의 점판암으로 된 특이한 경우인데,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공예적 석탑이다. 
봉천원구는 혜덕왕사가 1079년(문종 33)에 절의 주지로 있으면서 창건했으므로 탑도 이 무렵에 조성된 것이라 생각된다.

오층석탑

미륵전의 북쪽 위 송대에 보물 제25호인 오층석탑이 자리한다. 정사각형 판재를 이용한 이 석탑은 높이가 7.2m로서 소박하고 단순한 구조를 지녔다

 본래 기록에 따르면 9층이라 하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옥개석의 형태나 체감율 등에서 6층 이상이 손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금산사를 창건하면서 이 석탑을 건립하였을 것이라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고,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전한다

 1971년 11월에 석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모악산금산사오층석탑중창기〉가 발견되었는데, 979년(경종 4)에 시작하여 981년에 완성했다는 사실이 보인다

 

 

방등계단과 오층석탑

방등계단 사리탑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미륵전의 북쪽 높은 대지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다

 또한 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조선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절을 찾아 이곳 방등계단에서 남긴 시가 한 수 전한다

 

 

적멸보궁 안에서 보면

방등계단 옆의 옛 나한전 자리에 세워진 예배각(禮拜閣)으로 유리벽을 통하여 방등계단에 있는 사리탑에 경배하며 예불을 드리는 곳이다.
불전 내부에는 따로 불단을 차려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예는 통도사 대웅전과 같은 경우이다

대장전과 석등

미륵전의 정면 서쪽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다포식 팔작지붕인 대장전(大藏殿)이 자리한다. 이 전각은 보물 제8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장전은 본래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워졌다.당시의 양식은 탑과 같이 산개형(傘蓋形)의 층옥(層屋)으로서 맨 꼭대기 옥개에는

 솥뚜껑 모양의 철개(鐵蓋)를 덮고, 다시 그 위에 불꽃 모양의 석조 보주(寶珠) 올렸다


석등을 통하여 본 불상

볌종각
범종각이 오른 쪽에 위치하는 이유는 불교의 체용설(體用說)에 입각하여 볼 때

오른쪽은 체(體) 왼쪽은 용(用)에 해당하는데 소리는 곧 용에 속하기 때문이다

범종각에는
불전 사물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을 함께 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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