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사계 산행

22.11.19 북한산 둘레길 9구간 마실길

세월민초 2022. 11. 21. 19:11

북한산 둘레길 9구간 마실길

 

예전에는 북한산을 주로 오르다 한동안 지방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는 멀리만 느껴진다

오늘은 10월 19일 가을에 마지막 잎새 따라 걷는 마실길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녀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삼천사와 진관사를 걸어 본다

 

 

구파발 뉴타운에서,,

 

 

유치원 다니는 막내 녀석 집에서 자주 여행용 케리어 끌며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자주 흥얼거린다

언제 가는데 ~~ 코로나가 빨리 끝나야 가지요 ㅎ

앞으로 요 녀석 둘과 버스, 기차, 비행기, 카페리 선박을 타고 가는 여행이 기다려집니다

 

 

 

 

차도로 따라가다 보면 입곡 삼거리 스타벅스 건물이고 좌측은 북한산 입구

우측은 한옥마을이며 길을 건너 식당가  X 돈가스 뒤로 가면 파란색 울타리

북한산 글램핑이 나온다

이 길이 북한산 둘레길 10구간 내시 묘역 길이다

 

 

우리는 지금 북한산 둘레길 10구간을 지나 9구간 마실길을 걷고 있다

이곳에서 집이 가까워 손녀들은 가끔 오는 동네 마실길이다

 

 

 

 

삼천사 탐방 지원센터 입구에서,,

 

 

보도블록 사이에서 도토리 캐는데 너무 열 중,,

 

 

마실길 구간

 

 

느티나무 보호수

지정 일자 1981년이고 당시 수령이 170년 되었으니 현재는 211년 된 거목이다

지정 당시 수고는 18m 둘레 420cm이었으나 41년이 지났으니 다시 측정해야 한다

 

 

 은행나무 군락지로 지금은 앙상한 가지들이지만 10월 중순부터 낙엽이 물들면 장관이다

 

 

계곡에서 올라오니 북한산 누리길이라고 큰 간판이 걸려있다

오래전에는 진관사 옛 계곡이 참 좋았는데 개발로 이곳은 자연스러운 계곡은 사라졌고

우측으로 한문화 건물과 주차장이 새로 신축되었네요

 

 

 진관사 앞을 지나 북한산을 오르고 내려오기도 여러 번 했는데,,

 

 

진관사 가람

 

 고려 초 진관(津寬)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행하던 신혈사(神穴寺)라는 작은 암자였다고 한다

고려 태조의 왕자인 왕욱과 태조의 손녀이자 경종의 왕비였던 황보씨 사이에서 난,

그러니까 숙부와 조카 사이의 근친혼으로 태어난 태조의 피를 직계로 이은 아이였던

왕순은 자신을 보살펴 주던 외숙부 성종이  병사하고 사촌형제 개령군 목종으로 즉위하자

위험을 느끼자 승려가 되어 피신한 곳이다

 

 

대웅전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쪽의 진관사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손꼽힌 이름난 사찰이며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국력을 수호한

고려 제8대 현종(顯宗)1011년(顯宗 2년)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6.25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복구된 고찰로 전해집니다.

 

 

대웅전 중문 위에 두 마리의 용은 다른 사찰에서 보기 드문 가람이다

 

 

아미타불에게도,,

 

 

대한민국 태극기가 숨겨졌던 칠성각 전경

 

 

2004년 5월 26일 칠성각 수리 중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어

국민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것은 오래된 태극기에 싸인 20여정의 독립신문류였다

 

1919년 6월에서 12월까지 발행된 독립신문. 신대한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십 수정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단재 신재호 선생이 상해에서 창간한

신대한신문 제2호 제3호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자유 신종보 등 항일 지하신문은

매우 가치가 높은 사료들이다

 

태극기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제작하고 3.1 만세 운동 때 직접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장기 위에 태극의 음방과 4패를 먹으로 그려 넣은 유일한 태극기로 항일정신이 담겼다

 

 

스님이었으며 독립운동가였던 백초월 스님

당시 진관사에 주석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백초월 스님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후세에 그 뜻을 전하고자 칠성각에 숨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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