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진 여행

19.03.16 천년 고찰 통도사 매화꽃

세월민초 2019. 3. 21. 21:12



천 년 고찰 아름다운 단청은 없어도 은은한 산새에 넋을 넣고


통 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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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로 가는 솔밭길에는 수령이 약 100년 넘은 소나무가 수백 그릇이 자생하고 있으며

수고는 15~20m 되어 보이고 어른 두 사람이 팔을 않아야 할 정도의 아름드리 노송 소나무들이 많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잘 보존된 내력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소나무를 잘라 군사용으로 사용하려는 것을

통도사 스님들이 맞서 싸운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한다




소나무 세 그루가 한 나무로 된 연리지다



오작교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 한 컷을 담고






사랑할 때는 역시 장미 한송이가 쥐약 ㅎ



통도사 해설사 사무소 옆에 장미 나무 한 그릇



경내를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능수 매화 한 그릇이 휘엉청 하게 늘어진 아름다운 자태를 만났다

2~3월에 핀다는 매화꽃이라 하지만 통도사는 남쪽이라 벌써 시드는 잎새

날씨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구나 ㅋ







힘차게 하늘로 용솟음치는 일편단심 매화꽃 향기도 그윽하다






산수유 한 그릇


경내 입구에 장미 매화 산수유 싱글로 한 그릇씩 심어져 있다

스님의 외로운 심정을 담은 듯 아니면 싱글 중생을 위한 부처의 넉넉한 가르침인지,,









 불교도가 존경하고 섬기는 불 · 법 · 승을 삼보라 하는데

 불의 통도사, 법의 해인사, 승의 송광사를 삼보 사찰이라고 한다.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고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형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 백과 사전 -



대웅전 앞에는 석등 그리고 5층 석탑 다음에 석등이 일렬로 서 있다






대웅전


그윽한 핑경 소리에 중생의 고뇌는 사라지로라!



향 돌



대웅전 우측 돌담길에 서 있는 매화 세 그릇



























 깊고 울창한 산사와 아름다운 영축산 기슭에 자리한 통도사



2018년 가을 영남 알프스 간월산 신월산 영축산 하프 종주, 하늘 억새 길을 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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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서 아름다운 홍매화꽃을 보니 기생 두향이가 그리워,,



이 글은 2015년 11월 15일 옥순봉과 구담봉을 산행하고 후기로 작성한 풍류 단편 글입니다

그냥 재미로 잃어 주심 좋고,, ㅋ




홍매화꽃을 그대에게,,


기생 두향이가 퇴계 이황에게 선물한 홍매화

강렬하고 뜨거웠던 가슴, 불타는 러브스토리는 이렇게 정열적으로 사랑을 하는 거야,, ㅎ



# 여기서 퇴계 이황 선생과 기생 두향의 매화꽃에 얽힌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나누자 #


깊고 뜨거웠던 사랑은 푸른 강물 위에 감동의 전설을 남긴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내 기억으로 이번이 5번째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여러 개의 기암절벽 봉우리가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어 금강산에 버금가는  산이다

한 번 오면 다시 오고 싶은 매력의 야릇한 산행의 즐거움과 남한강이 흐르는 충주호반 위에 걸쳐 있어

산 정상에서 보는 아름다운 절경에 감탄하고 유람선을 타고 비경을 감상하면 

신이 빚어진 최고의 예술 걸 작품을 볼 수 있다.


  작은 산이나 너무나 아름다워 예부터 풍류가 시인들이 오고 가면서 긴 여운을 남겼던 곳이며

퇴계 이황 선생과 단양 기생 두향의 애틋한 사랑 속에 더욱 유명해진 전설의 산이다 


 32년의 세대 차이를 넘어 짧고 강렬한 러브스토리

 

 기생이었으나 총명하고 학문과 예술의 깊이가 두터웠던 여인 !

 동방 최고의 선비로 칭송받던 퇴계 이황의 마음을 사로잡다


퇴계 이황이 사랑하는 두향에게 보낸 연애 편지다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옛 성현의 오래된 책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초연히 밤을 새워 앉아 있노니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속식)창가에 다시금 봄 소식 보게하여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기막힌 비파소리 대하는 듯 싶네


두향은 조선시대 단양 태생의 관기(官妓)로 시와 거문고에 능해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해 오자

그를 일편단심 사모했으나, 퇴계의 단양 시절은 열달만에 끝나고 풍기군수로 다시 전근을 가게 됩니다


 그것은 고을 수령은 임기가 보통 5년인데

 그의 넷째 형 온계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 까닭이었습니다
형제가 같은 도에서 근무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 하여 퇴계는 고개 너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며

 이를 '상피제도'라 한답니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급작스런 이별은 두향에겐 큰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단양을 떠날 때 퇴계의 봇짐 속엔 수석 두 개와

 두향이 마음을 담아 선물한 매화 화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혹시 홍매화,,

그는 이 매화를 평생 애지중지했으며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갔을 때도 

 이 매화와 늘 함께 했다고 한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어
 어느덧 술 다 하고 임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구담봉에서 거북바위를 보셨나요


퇴계 이황과 두향의 러브스토리 중에서 거북바위가 자주 등장한다


비경이 아름답고 물결이 비단결 같은 곳 거북바위에 올라서,,,

두향이가 퇴계 이황과 인생을 논했던 곳 옥순봉과 거북바위,,,

내가 죽거든 거북바위가 잘 보이는 곳 강선대에 묻어다오

 

구담봉 정상에서 기암절벽 아래 비단결 같은 파란 물 위에 구담봉이 비치면 거북이 한 마리가 절벽을 기여서

구담봉으로 오르는 형상이 보이는데 이 형상을 보면 100세를 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마도 퇴계와 두향의 강렬하고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또 하나의 거북바위 전설을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강선대 높이 15m

옛날에는 신선과 선녀들이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기암절벽을 한계단 한계단 밟고 내려왔다고 해서 강선대라 하였다

 

사랑하는 임을 따라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여인 !


 퇴계가 10개월만에 단양군수 직을 떠나자, 그녀는 퇴적계(退籍屆)를 내놓습니다

신임 사또에게 ‘이황을 사모하는 몸으로 기생을 계속할 수 없다’며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없애달라고 간청

기생을 면했다고 합니다
두향은 구담봉 앞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강 언덕에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을 했고

그후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나중에 퇴계가 안동에서 타계하자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자결했다고 전하는데, 이렇게 유언했다고 한다


내가 죽거든 무덤을 강가 강선대에 묻어다오

거북바위(구담봉)는 내가 퇴계선생을 모시고 자주 인생을 논하던 곳이다

그녀는 유언대로 강선대 가까이에 묻혔고, 그로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잔을 올리고 놀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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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행은

부산 이기대 길과 해파랑길을 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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