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진 여행

15,11,15 옥순봉, 구담봉 단양군

세월민초 2015. 11. 19. 03:43




 단양팔경 옥순봉과 구담봉


깊고 뜨거웠던 사랑은 파란 강물 위에 감동의 전설을 남긴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내 기억으로 이번이 5번째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여러 개의 기암절벽 봉우리가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어 금강산에 버금가는 작은 산이다

한 번 오면 다시 오고 싶은 매력의 야릇한 산행의 즐거움과 남한강이 흐르는 충주호반 위에 걸쳐 있어

산 정상에서 보는 아름다운 절경에 감탄하고 유람선을 타고 비경을 감상하면 신이 빚어진 최고의 예술 걸 작품을 볼 수 있다


  작은 산이나 너무나 아름다워 예부터 풍류가 와 시인들이 오고 가면서 긴 여운을 남겼던 곳이며

퇴계 이황 선생과 단양 기생 두향이의 애틋한 사랑 속에 더욱 유명해진 전설의 산이다 


이곳에 올 때는 봄, 여름철이라 언젠가 아름다운 오색 단풍 속에 산행도 하고

 예쁜 사진을 촬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11월 7일 토요일 산행 날짜를 잡았으나 비가 왔어 15일로 변경했고 다행히 전날 서울은 비가 그쳤다

비가 여러 번 온지라 단풍은 물 건너갔을 터 날씨나 좋았으면,,


그런데 뭐야

이곳은 아침까지 비가 왔는지 안갯속에 시야가 아주 흐리고 산행길은 비에 젖어 미끄럽다

오늘도 좋은 사진 촬영은 뻥쳤나,,?





옥 순 봉












2010년 4월 거북바위



2013년 8월 유람선에서 본 옥순봉


             〈옥순봉도〉


단원 김홍도가 단양의 산수를 둘러보고 그린 것으로 《병진년화첩》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랑의 힘으로 가져온 옥순봉


   조선 명종 때 이황이 단양 부사로 부임하여 옆 고을 청풍 부사와 지금의 옥순봉에서 연회가 있었고

거기에 단양 태생의 기생 두향이가 있었다 

 대학자인 퇴계 이황이 '봉우리가 희고 푸른 대나무 순 모양으로 바위가 힘이 있어 보여, 옥순봉이란 이름을 붙였다

 기생 두향도 청풍군 지역에 있는 옥순봉의 비경에 감탄하여 청풍부사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 달라고 요청 하나 부사는 두향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러자 이황이 옥순봉 석벽에 '단구 동문'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고 하며

그 후 퇴계와 두향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옥순봉과 구담봉에서 이루어졌고 

지금도 옥순봉 주소는 단양군 단성면 월악로로 돼 있다




옥 순 대 교









금 수 산 1,016m



안갯속에 가려진 가은산 562m



우측 여러 개 봉우리가 구담봉



구담봉 아래 봉우리






갓 바위



구담봉 능선에 100년은 되어 보이는 오묘한 푸른 소나무









구담봉 아래 펼쳐지는 남한강



2013년 8월 유람선에서 본 구담봉


〈구담도(龜潭圖)〉

            
                           

진경산수의 화법으로 유명한 정선이 구담봉의 모습을 그렸다. 깎아지른 절벽과 구담의 강물, 나룻배가 실경처럼 느껴진다.



구담봉 정상




 32년의 세대 차이를 넘어 짧고 강렬한 러브스토리

 

 기생이었으나 총명하고 학문과 예술의 깊이가 두터웠던 여인 !

 동방 최고의 선비로 칭송받던 퇴계 이황의 마음을 사로잡다


퇴계 이황이 사랑하는 두향에게 보낸 연애편지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옛 성현의 오래된 책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초연히 밤을 새워 앉아 있노니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속식)창가에 다시금 봄 소식 보게하여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기막힌 비파소리 대하는 듯 싶네


두향은 조선시대 단양 태생의 관기(官妓)로 시와 거문고에 능해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해 오자

그를 일편단심 사모했으나, 퇴계의 단양 시절은 열달만에 끝나고 풍기군수로 다시 전근을 가게 됩니다
그것은 고을 수령은 임기가 보통 5년인데, 그의 넷째 형 온계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 까닭이었습니다
형제가 같은 도에서 근무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 하여 퇴계는 고개 너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며

 이를 '상피제도'라 한답니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급작스런 이별은 두향에겐 큰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단양을 떠날 때 퇴계의 봇짐 속엔 수석 두 개와

 두향이 마음을 담아 선물한 매화 화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매화를 평생 애지중지했으며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갔을 때도 

 이 매화와 늘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는 도산서원 입구 한켠에 절우사(節友社)란 정원을 꾸며놓고 거기에 솔, 대, 국화, 연(蓮)과 함께 매화를 심고

자신을 포함해 절친한 '여섯 벗'이라 하며 즐겼다고하지요.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어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구담봉에서 본 형제봉 722m






구 담 봉

산을 하산하니 날씨가 좀 좋아졌다, 구봉의 비경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습니다
















정면에서 본 구담봉






구담봉에 거북바위를 보셨나요


퇴계 이황과 두향의 러브스토리 중에서 거북바위가 자주 등장한다

비경이 아름답고 물결이 비단결 같은 곳 거북바위에 올라서,,,

두향이가 퇴계 이황과 인생을 논했던 곳 옥순봉과 거북바위,,, 내가 죽거든 거북바위가 잘 보이는 곳 강선대에 묻어다오

 

구담봉 정상에서 기암절벽 아래 비단결 같은 파란 물 위에 구담봉이 비치면 거북이 한 마리가 절벽을 기여서

구담봉으로 오르는 형상이 보이는데 이 형상을 보면 100세를 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마도 퇴계와 두향의 강렬하고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또 하나의 거북바위 전설을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퇴계 이황이 옥순봉이라 표현한 걸 보면 옛날에는 옥순봉이 있었고 구담봉이란 지명이 없었으며 구담봉에는 거북바위가 없다

 두 사람은 구담봉을 가칭 거북바위라 부른 것 같으며 아름다운 비경에 사랑의 전설만 남았습니다




강선대 높이 15m

옛날에는 신선과 선녀들이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기암절벽을 한계단 한계단 밟고 내려왔다고 해서 강선대라 하였다

 

 

사랑하는 임을 따라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여인 !


 퇴계가 10개월만에 단양군수 직을 떠나자, 그녀는 퇴적계(退籍屆)를 내놓습니다

신임 사또에게 ‘이황을 사모하는 몸으로 기생을 계속할 수 없다’며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없애달라고 간청

기생을 면했다고 합니다
두향은 구담봉 앞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강 언덕에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을 했고

그후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나중에 퇴계가 안동에서 타계하자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자결했다고 전하는데, 이렇게 유언했다고 한다


내가 죽거든 무덤을 강가 강선대에 묻어다오

거북바위(구담봉)는 내가 퇴계선생을 모시고 자주 인생을 논하던 곳이다

그녀는 유언대로 강선대 가까이에 묻혔고, 그로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르면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잔을 올리고 놀았다고 한다  

 

1976년 소설가 (故)정비석은 그곳을 직접 찾아 충주댐이 완성되면 두향의 무덤이 수몰돼니

단양군수에게 이장을 청하여 지금의 안전지대로 옮겨졌으며
소설가 정비석(1911-1991) 씨가 쓴 명기 열전에는 두향이 죽령을 넘어 풍기로 찾아가

 먼 발치에서 퇴계를 바라보고 돌아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구담봉을 배경으로 유람선 뱃길을 촬영,,















말복산 710m

남한강을 거슬러 단양으로 가는 뱃길



장회나루



장회나루에서 본 형제봉




형제봉 능선


2년 전에 도보 여행으로 이 길을 17일간 걸었

서울 한강에서 출발하여 팔당댐~양평~이천~여주~충주댐~아름다운 남한강을 거슬러

 다시 옥순봉~단상역~신단양~동강을 거슬러 영월~아우라지 정선~광동댐 삼척~검룡소 태백에 이른다 


참으로 아름다운 금수강산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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