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진 여행

15,10,25 한탄강 한여울길

세월민초 2015. 10. 26. 22:58




후고구려 궁예가 마지막 꿈꾸던 화려한 도읍


철원 평야 한여울길


궁예(弓裔, 857?~918, 재위 901~918)는 진골의 집안에서 태어나

 ‘나라를 망칠 놈’이라는 예언과 함께 모진 인생역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타고난 힘과 재주로 사람을 모아 드디어 후고구려를 세우는 왕이 되었다.

그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했으며, 관심법(觀心法)이라는 특유의 술책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그것이 지나쳤을까, 포악한 성격으로 주변의 인심을 잃고, 드디어 부하인 왕건에 의해 내몰려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과연 난세의 영웅일까, 악한 군주의 표상일까.  





한여울길


오덕리~직탕폭포~송대소~한반도 지형 계곡~고석정~승일교 약 8km


출발지는 오덕리가 아니고 8월 16일 DMZ 남방 한계선 자전거 여행 때 갔던 길을 다시 걸어서 갑니다

동송읍에서 매 30분 간격으로 고석정을 지나 갈말읍에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덕리를 조금 지나

장흥리에서 하차 철원 평야 은행나무 길을 따라 약 1,5km 걸어가면 한여울길 직탕폭포에 이른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버금가는 작지만 큰 한국의 직탕폭포


8월 16일, 계곡에 물이 어느 정도 있어 직탕폭포의 위엄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ㅎ

그래도 나이아가라 폭포를 생각하면서 보세요, 시원하지 않나요 ㅋ


아래 사진은 여름철 1시간 동안 장대기가 내린 뒤다












태봉 대교 번지 점프대









한탄강의 최대 비경 송대소



한탄강은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써서 우리말로 ‘큰 여울’이라는 뜻이다

 200만~1만 년 전 10여 차례 이어진 오리산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철원 평야 일대를 뒤덮었다

용암이 굳어진 현무암 사이로 물이 스며들면서 틈이 커지고, 거기에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게 한탄강이다

빠른 물살에 바위가 깎이고 파여 좁고 깊은 협곡과 주상절리, 수직 절벽 등이 형성됐다

이런 현무암은 남쪽 제주도와 같은 지질적 형상으로 북쪽에서는 유일하게 철원 평야다













한반도 지형이란 안내판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ㅎ 



가을과 함께 사라지는 잠자리의 마지막 열애



저 높은 하늘,, 가을 거지가 끝난 철원 평야













의적 임꺽정과 고석정


조선 시대에는 탐관오리에 부당한 관료가 많아 백성들이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의적들이 산재했고 이곳 철원 한탄강에도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일대를 근거지로 활동했으며

 건너편 산등성이를 따라 석성을 쌓고 자연 동굴에 은신했다고 한다

임꺽정은 때로 변신술을 부렸는데, 관군이 몰려오면 꺽지로 변해 물속에 숨었다

 그 모습을 보고 ‘꺽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석바위



고석정와 고석바위


현무암 협곡이 만들어낸 한탄강 최고의 절경은 고석정과 고석바위다

 한쪽은 현무암 절벽이고 반대편은 화강암 절벽인데, 두 암석이 깎이는 정도가 달라 지금 같은 절경이 탄생했다

 강 가운데 우뚝 선 높이 10여 m 바위와 거기 붙어 자라는 소나무 군락, 주변의 현무암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부른다

 독특한 풍광은 예부터 이름이 나서 신라 진평왕 때 고석바위 맞은편에 2층 누각의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이후에도 숱한 시인 묵객이 다녀갔다





선녀탕



거북이 바위



고래라고 하던가, 물개라고 하던가 아니면 민물고기 "꺽지" ㅎ









고석정과 고석바위





고석정에서 승일교 가는 옛길





북한과 남한이 함께 만든 우리나라 최대 걸 작품


승 일 교


철원 승일교(鐵原 昇日橋)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장흥리(長興里)와 갈말읍(葛末邑) 내대리(內垈里)를 잇는

 한탄강의 다리로 지방도 제463호선에 속해 있다. 고석정인근에 있으며,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교량의 노후화로 현재 차량은 1999년 개통된 한탄대교를 이용해야 한다


일제 패망 직후, 철원군 일원이 소련군정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효 지배 영역에 속하던

1948년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착공되었다.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었던 김명여의 설계로 러시아식 공법의 아치교로 설계된 이 다리는

동송읍 쪽의 아치교각만 완성된 상태에서 한국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2년 주한 미군 79공병대와 대한민국 국군 62공병대가 갈말읍 쪽 교각과 보를 완성,

 1958년 개통하고 승일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원군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시작하여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전해지나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 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조선인민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박승일(朴昇日, 1920년 ~ ? )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것이며,1985년 세워진 승일교 입구의 기념비에도 이를 정설로 소개하고 있다

. 비슷한 사례로 같은 시기에 포로로 끌려간 고근홍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근홍교가 있다

                                                                                                                                                     ㅡ 백과사전ㅡ



북한에서 공사한 50m 아치형 다리

북한 정권에서 시작한 승일교 공사가 중단된 지 8년 만에 재착공 하면서 공사에 참여했던 한 미군 장교가 찍은 사진이다.



남한에서 나머지 한쪽 다리 50m를 공사하는 중



1958년 12월 3일 주한 미군 79 공병대와 국군 62 공병대가 공사 6개월만에 완공되어 철원 갈말읍과 동송읍을 잇는 도로의 옛 풍경이다



북쪽 장흥리에서 본 승일교


그냥 보기에는 아름다운 다리이며 완벽한 하나의 걸작품이나

다리 양쪽의 건축 공법은 확연히 다른 다리다



남쪽에서 본 다리



65년이 흐른 기나 긴 세월

지금도 미완성의 아름다운 승일교 다리


북한에서 소련식 유럽공법으로 공사한 다리 반절과 남한에서 공사한 다리 반절 모형이다

언뜻 보기에는 한 모형이나 자세히 보면 교각의 받침목이 너무 다른데,,

북쪽의 모형은 유럽풍의 아치형 교각에 받침목이 정교하고 여러 개로 안정감과 세련된 조화가 아름답다

남쪽의 공법은 한 마디로 조잡하고 불안전한 교각의 모형이다



북쪽 교각에 비하여 남쪽 교각은 불안전하고 조잡하기 그지 없다








신 한탄 대교



이곳에는 신 한탄 대교와 승일교 다리가 있다




태조 왕건 드라마 "궁예의 최후"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JgszSHkFnU&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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