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진 여행

24.02.12 관동팔경 4경 낙산사 의상대

세월민초 2024. 2. 16. 01:20

 

 

낙산사 의상대,,

 

어제는 설악산 눈 산행을 하고 낙산 해변으로 이동하여 숙박하였다

그동안 낙산사는 여러 번 찾았으나 항상 새로운 부처의 길을 걷는 듯하다

 

여기에서 부연하는 송강 정철은 누구인가 ?

송강 정철은 학문이 높아 선비로서 덕망과 존경을 받았으며 선조가 아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조는 나라를 위해서 그에게 여러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거절한다

선조는 하물며 영의정을 내렸으나 거절하며 관직을 주시러면 변방 하급직을 주십시오

 

선조는 할 수 없이 그에게 강원도 관찰사를 명 한다

그 당시는전국 도 관찰사( 지금의 강원도 지사 ) 중에서 변방의 가장 낮은 직급이다

송강 정철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고맙고 기뻐서 선조가 있는 궁궐을 항해 수없이

절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1580년 조선 선조 13년 송강 정철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다

다른 관리라면 말을 타고 수십 명의 관리를 대동하고 천하를 호령하며 강릉 대호부로

갔겠으나 정철은 괴나리봇짐 등에 메고 한양- 수원-이천-홍천-춘천-금강산을 돌아서

 

다시 동해안을 따라 해금강-고성-속초-강릉-삼척-지금의 경북 울진군 월송정까지 

관동팔경과 해. 내. 외금강 등 절승지를 유람한다

 

그는 관직과 권력보다 풍류와 시를 읊은 조선 최초 시인이며 자연을 사랑한 선비로서

가사 문학 선구자 마음으로 읊은 수많은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심금을 울려줍니다 

 

  송강 정철이 걸었던 관동별곡 800백 리 옛길을 찾아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 전망대서

동해안을 따라 경북 울진군 월송정( 옛날에는 강원도 )까지 걸었습니다

 

또 해파랑길 따라 부산시 오륙도에서 고성군 통일 전망대까지 걸어서 종주를 하였고

동해안 자전거 종주 통일 전망대에서 부산시 오륙도까지 주행도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사랑합니다.

 

 

 

낙산 해변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동녘의 아름다운 빛을 마음에 담고 새로운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송강 정철이 걸었던 관동별곡 800리 길 중에서,,

 

관동팔경 제4경 낙산사 의상대

 

 

본사Ⅱ ─ ④] : 의상대에서 본 일출 광경

 

梨니花화난 발셔 디고 졉동새 슬피 울 제,

洛낙山산 東동畔반으로 義의相샹臺대예 올라 안자,

日일出츌을 보리라 밤듕만 니러하니, 祥샹雲운이 집픠난 동,

六뉵龍뇽이 바퇴난 동, 바다헤 떠날 제난 萬만國국이 일위더니,

天텬中듕의 티뜨니 毫호髮발을 혜리로다.

아마도 녈구름 근쳐의 머믈셰라.

詩시仙션은 어데 가고 咳해唾타만 나맛나니.

天텬地디間간 壯장한 긔별 자셔히도 할셔이고.

 

배꽃은 벌써 떨어지고 접동새가 슬피 울 때에,

낙산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에 올라 앉아,

 

일출을 보려고 한밤중에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마구 피어나는 듯,

여섯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해가) 바다에서 떠날 때에는

온 세상이 일렁거리더니,

 

하늘에 치솟아 뜨니 가는 터럭도 헤아릴 것 같구나(매우 환하다).

아마도 지나가는 구름이 해 근처에 머물까 두렵구나.

(간신배들이 임금의 총명을 흐리게 할까 염려하는 시 ‘등금릉봉황대’를 읊은)

 

이백은 어디 가고 그의 시만이 남았느냐?

이 세상에 굉장한 소식을 (그의 시에서) 자세히도 (표현)하였구나.

 

 

 

 

 

 

절벽 위에 의상대

 

 

 

 

 

 

 

 

 

 

 

 

홍련암

 

낙산사 옆쪽에 있는 이 불전은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세웠고

광해군 12년(1619)에 고쳐 세운 기록이 남아 있으나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6년(1869)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의상이 입산하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색깔이 파란 이상한 새를 보고 이를 쫓아갔다

 새는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으며 의상은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석굴 앞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나체로 정좌하여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7일 7야를 보내자 깊은 바닷속에서 홍련(붉은 빛의 연꽃)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의상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기원하니 만사가 뜻대로 성취되어 무상 대도를 얻었

이곳에 홍련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의 기운이 강한 곳에 위치한 암자로는

금오산 향일암, 금산 보리암, 백담사 봉정암, 낙산사 홍련암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에 탐방하는 암자는 낙산사입니다

 

우리나라 3대 관음 도량 중 하나인 낙산사는 해변에 자리 잡은 특이한

구조를 갖춘 절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 말사로서 해변에 위치하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으로

관음 기도 도량의 하나인 낙산은 671년(문무왕 11)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고

 858년 범 일에 의해 중건된 후 여러 차례 불타 중건이 거듭되었으나

6·25 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그러나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큰 산불로

낙산사 원장·원통보전·일주문·낙산사 홍예문 등 주요 전각과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고,

낙산사 7층 석탑이 일부 손상되었다

그 후 중건을 거듭하여 옛 낙산사의 모습에 이른다

 

낙산의 초대 걸작품은 1977년에 화강암으로 만든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 입상(海水觀音立像)이 있으며 절 앞에는 의상의 전설이 담긴

홍련암이 있습니다.

 

 

 

해수 관음보살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의 원효대사가 낙산사를 참배하기 위해 오다가 보니

흰옷 입은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는데 대사가 그 벼를 달라고 하자

여인은 벼가 익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대사가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속옷을 빨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 물을 청했는데
여인은 빨래를 빨던 더러운 물을 떠 주었다
원효가 그 물을 버리자 이때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스님은 가지 마십시오'하고는 숨어버렸다

원효가 돌아보니 그 여인은 없어지고 짚신 한 짝이 남아 있었는데 절에 와서 보니

나머지 짚신 한 짝이 관음상 앞에 있었다
비로소 원효는 앞에서 만났던 그 여인이 관음의 진신임을 깨달았다 한다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상으로는 남쪽으로는 금오산의 향일암의 해수관음상

동쪽으로는 낙산사 해수관음상 그리고 서쪽으로는 보문사 해수관음상을 꼽습니다.

 

 

 

 

 

 

해수 관음 법당에서 창문을 통하여 본 해수 관음보살

 

 

 

 

원통보전과 칠층 석탑

 

원통보전은 2005년 양양 산불로 소실되었고 7층 석탑은 일부가 손상되었다.

 

 

 

 

 

 

낙산사에서 본 낙산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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