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역사 여행

15,06,14 경복궁 나들이

세월민초 2015. 6. 16. 19:31

 

 

 

 

조선왕조 500년 찬란한 문화유산 탐방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오후 3시 풍경

 

 

 

 

 

 

 

 

 

 

 

 

 

 

 

 

 

 

 

 

 

 

 

 

 

 

 

 

 

 

 

 

광 화 문

 

 

 

조선왕조 오백년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경복궁 

 

사적 제117호.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北闕)로도 불린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경복궁을 만드는 일이었다

 1394년(태조 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궁의 이름은 〈시경 詩經〉에 나오는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에서 따왔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다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 빈 궁궐이었다 - 백과사전 -

 

 

 

 

 

 

 

 

홍 례 문

 

 

영제교와 근정

 

 

 

 

 

 

 

 

 

근정전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크게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집현전을 두어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 문화유산 -

 

 

 

 

 

 

 

사  정  전

 

 

 

 

 

 

 

 

 

 

 

 

 

 

 

 

강 녕 전

 

 

 

 

 

 

 

 

강녕전 우측 내실

 

 

 

 

좌측 내실

 

 

 

교 태 전

 

 

 

 

 

 

 

교태전 대청 마루와 뒤뜰에 아미산

 

 

우측 내실

 

 

좌측 침실

 

 

 

 

 

 

 

교태전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꽃 무늬 담장

 

 

 

 

 

 

 

 

아미산 정원과 굴뚝

 

 

 

 

 

 

 

아미산의 굴뚝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침전이었던 교태전(交泰殿)의 구들과 연결되었던 굴뚝이다

교태전은 왕비의 중궁전(中宮殿)으로 태조 3년(1394) 창건되었으나 명종 8년(1553)에 소실되어 1555년에 재건되었으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다시 소실되어 고종 6년(1869)에 재건되었다

 

좌측에서 부터 1번

 

 

2 번

 

 

3 번

 

 

4 번

 

 

3 번과 4 번

 

 

1번, 2번, 3번

 

 

 

경희루와 향원정의 아름다운 풍경

 

 

 

 

 

 

 

 

 

 

 

 

 

 

 

 

 

 

 

 

 

 

 

 

 

 

 

 

 

 

 

 

 

 

작품 이미지 사진

 

 

 

 

 

 

 

 

 

 

 

 

장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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